피지
여기서 말하는 피지는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이 아닌 말 그대로 피부의 지방질을 의미한다.
이를 '개기름'이라고도 비하하여 부르는 까닭은 그만큼 사람들이 '번들거리는' 피부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피지는 모공에서 만들어진다.
모공의 비교적 입구에 접한 부위에는 피지를 만드는 주머니로 열리는 피지선의 분비관이 있다. 피지는 피지를 생산하는 피지선에서 만들어져 분비관을 통해 모공입구로 분비된다. 그러므로 털이 피부표면으로 자라 나갈 때 마찰을 줄여주고 털을 기름지고 윤기있게 해 준다. 피지 분비량은 얼굴을 기준으로 0.1-1.0그램 정도로 사람마다 차이가 큰 편이다.
피지분비가 많은 사람이 머리를 일주일만 감지 않으면 그의 머리가 매우 '찰지게' 되어 바람에도 흩날리지 않고 찰랑거리지 않는다. 그러한 기름진 머리를 가진 사람은 얼굴에도 번들거림이 많고 조명을 받으면 더욱 반짝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토록 홀대받는 피지는 사실 피부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보호막이라는 것이다.
피지의 주성분은 지방산과 콜레스테롤 등으로 땀과 함께 분비되는 젖산처럼 쉽게 산화되어 피부표면에 산성피막을 형성한다. 일부 피지성분은 피부의 상재균의 주식이 되며 이 상재균들은 다른 훨씬 더 해로운 균들의 증식을 막아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가 흔히 샤워를 한 뒤 피부에 뾰루지가 올라오는 것을 경험하곤 하는데 이는 비눗물이 이러한 보호구조가 제거되어 피부 보호막이 무너진 까닭이다. 피부는 보호막이 무너지고 나면 공기중이나 수건, 화장품 등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세균들의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는 것이다. 운이 나쁘면 그러한 세균들에 바이러스가 가세하여 물집을 동반하는 피부병변이 삽시간에 얼굴 전체로 퍼지기도 하고 좁쌀같은 돌기들이 얼굴을 뒤덮기도 한다. 대체로 이러한 것들은 손으로 건드릴수록 주변으로 퍼져가는 경향이 있다.
피지가 없으면 여드름도 없다. 여드름균도 피지를 통해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드름의 치료에는 세안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피지생산은 신체 내부의 홀몬자극(안드로젠)에 의해서 증가하지만(그래서 궁중의 내시는 여드름없는 뽀얀 피부를 유지했다. 그리고 안드로젠은 흔히 남성홀몬으로 불리우지만 여성의 몸에서도 분비가 된다.) 피지를 조절할 목적으로 홀몬조절제나 비타민유도체(로아큐탄)를 함부로 복용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약들은 신체의 정상적 생화학환경을 일정한 정도 변형시키는 것으로 궁극적인 치료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여성홀몬(에스트로젠)은 여드름 생성을 억제하고 피부를 희게 만든다. 그러나 지나친 양의 에스트로젠은 일부 변형되어 반대작용을 나타내기도 한다.
피지가 없으면 잔주름이 늘어나고 기미가 증가하며 트러블이 많아진다. 모공은 일시적으로 줄어들겠지만 이후 더욱 자극을 받아 커질대로 커져서 나중에는 아예 귤껍데기처럼 되고 만다. 현대 도시여성의 피부가 나날이 망가지는 것은 지나치게 피지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피부가 엉망인 사람일수록 유난히 정성껏 바르고 정성껏 씻는 사람이다. 그 책임은 화장품회사들의 지나친 상업주의에 있다. 본래 화장품은 세안을 통해 씻겨나간 피지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초기 화장품들의 주성분은 물과 기름이었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으니 유화제를 넣는다. 이것을 기초화장품이라고 한다. 그러한 기초화장품은 피지를 대신하도록 만든 것이므로 적당히 번들거린다. 그런데 여성들이 번질거리는 느낌을 너무 싫어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화장품회사들은 '번들거리지 않는' 화장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다.
심지어는 유명 피부과 의원들까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며 가세하였다. 대박이 터지자 돈 맛을 안 후로는 아예 '뽀송뽀송'하지 않은 것은 화장품 코너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에 있다. 바로 그 '뽀송뽀송'함은 기름을 줄이고 합성수지를 사용했기 때문이며 합성수지는 결국 피지를 녹여내는 유화제와 다르지 않다.
그러한 화장품을 사용하면 할 수록 피부가 점점 건조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피부가 건조해지면 모공이 늘어나고 실핏줄과 홍반성 트러블이 증가하며 잔주름이 덮인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아침저녁으로 비누세안을 철저히 함으로써 피지를 박멸하고 다음 유화제가 잔뜩 들어있는 '뽀송뽀송'한 화장품으로 그나마 남아있는 피지의 씨를 말린다. 공해가 심하고 먼지가 많다보니 씻는 일을 게을리 할 순 없으나 지금의 도시인들은 그간 너무 바르고 너무 씻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열심히 바르고 씻는 것이 피부를 보호하는 쪽이 아닌 오히려 서서히 피부를 망가뜨려 온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실제로 시골여성과 도시여성의 피부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시골여성은 값비싼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훨씬 더 매끄럽고 고운 피부결을 간직하고 있다. '시골'이 사라져가는 요즘 세상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덜 바르고 덜 씻을 수는 없을까? 덜 바르고 덜 씻으려면 '공해'도 덜 만들어야 하고 맨얼굴로 자신있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먹는 것도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을 버리고 채소와 곡식 본래의 맛을 알아가는 것처럼 얼굴도 희고 붉은 것에 길들여진 사고를 버리고 본래의 피부를 회복해야 한다. 피지는 너무 많아도 귀찮지만 너무 없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넓어진 모공과 늘어난 잔주름, 칙칙한 잡티들은 모두 너무 이른 시기부터 화장을 시작한 까닭이고 그러한 것을 부추기는 상업적인 대중문화와 화장품회사들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바르는 것과 씻는 것을 줄이면 서서히 피부는 회복된다. � 글렌징은 피지선을 자극하므로 악순환을 불러 일으킨다. 피부표면을 무엇인가를 사용하여 문질러대는 것도 모공을 확대시키는 지름길이다.
피지 조절은 식습관을 주의깊게 살펴서 기름진 음식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인 수면과 변비없는 쾌변을 달성해야 한다. 너무 지나친 피지선의 발달과 그로인한 여드름 등은 시너지나 제네시스, 블루파장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약물을 사용할 수 있으나 가급적 권장하지 않는 것이 맞다. 피지와 모공, 여드름 등의 현대인의 피부는 화장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장기적인 인내를 가지고 치료해야만 한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피부를 바꾸어야 한다. |